Kim Joonun | Unstable Arrangements
우울하지 않기 위한 우울한 필터링
김주눈 작가의 작품은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의 집합체다. 작가는 주변에서 흔히 스쳐 지나갈 법한 대상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그 대상들에 덧씌워진 의미를 하나씩 벗겨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회화의 틀을 더욱 과감히 벗어나고자 한 실험의 결과물로, 삶의 비극과 아이러니,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유희와 자유를 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비극적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왜 그것들이 일어나는지 질문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극 속에서 압도되지 않기 위해,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에서 놀이의 방식을 찾는다. 김주눈의 회화는 의미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의미를 비워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때로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슬픔을 비웃는 유희의 순간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작가는 감정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창조적 광경을 재조합한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작가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일상적인 것을 낯선 풍경으로 전환시키는 독특한 방식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신발, 산책하던 길에서 만난 평범한 일상들이 충격적이고도 유머러스한 풍경으로 변모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 가진 사회적 메시지나 기존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들이 의미를 잃고 재료가 되는 순간이다. 작가는 이런 대상을 색종이처럼 다루며 새로운 맥락 속으로 섞어낸다.
김주눈의 작업은 비극과 광기를 유희의 방식으로 흡수한다. 이는 마치 팀 버튼의 멜랑콜리한 미학처럼, 비극과 어둠을 낯선 아름다움으로 전환하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작가의 회화는 단순히 어두운 세계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익숙한 대상들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하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당혹감마저도 웃음으로 바꿔 놓는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의미를 내려놓고, 세상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을까?’ 작가에게 회화는 자신의 삶을 저며서 화면 위에 펼쳐 놓는 작업이자, 억눌린 감정을 벗겨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비극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점차 받아들이는 감각을 찾는 노력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웃음과 슬픔, 비극과 놀이가 뒤섞인 낯선 풍경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광경 속에서 김주눈의 독특한 시선과 유희의 방식을 통해,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Dancing on the Edge of Melancholy
The works of artist Joo Nun Kim are a collection of unique perspectives on life and the world. She observes ordinary, everyday objects with an unfamiliar lens, peeling away their assigned meanings one by one to explore new possibilities. This exhibition presents the results of her bold experiments to break free from the conventional boundaries of painting, encapsulating the tragedies, ironies, and the playful freedom she discovers within life.
The artist closely examines the tragic events surrounding her and questions why they occur. Yet, to avoid being overwhelmed by such tragedies, she seeks a playful approach at the boundary between life and death. Joo Nun Kim’s paintings are a process of emptying meaning from a world overflowing with significance. This process often transforms into moments of satire or playful defiance of sorrow. Through these shifts, the artist frees herself from emotional constraints, reassembling a uniquely creative vision.
The motifs in this exhibition are deeply tied to the artist’s life, while simultaneously transforming the ordinary into unfamiliar landscapes. Her father’s shoes and everyday scenes encountered during her walks metamorphose into striking and humorous imagery. What’s crucial here is not the social messages or inherent meanings of these objects but the moment they lose their meanings and become mere materials. The artist treats these objects like colored paper, weaving them into new contexts.
Joo Nun Kim’s work absorbs tragedy and madness through playfulness. It echoes the melancholic aesthetics of Tim Burton, transforming darkness and tragedy into a strange beauty. However, her paintings go beyond merely presenting a dark world. They invite viewers to discover fresh perspectives within familiar objects, turning even the disorientation they feel into moments of laughter.
Through this exhibition, the artist poses a question to the audience: How can we let go of meaning and perceive the world freely? For her, painting is both an act of laying bare her life on the canvas and a process of shedding suppressed emotions. This process does not aim to evade or deny tragedy but rather to learn how to coexist with it and gradually embrace a sense of acceptance.
In this exhibition, we encounter an unfamiliar landscape where life and death, laughter and sorrow, tragedy and play intertwine. Through Joo Nun Kim’s unique perspective and playful approach, we hope viewers will discover a new way to relate to the world.
Artist’s Statement
이번 회화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이미지에 대한 규칙과 제한을 풀어버렸다. 전에는 최대한 인식이 가능하고 서사가 없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대했는데, 이런 방식에 의문을 느껴 좀 더 내 삶과 연계된 이미지를 혼합해, 화면 안에서 자율적으로 구성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좀 더 알아들을 수 없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작업해 보기로 했다. 이는 회화가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어서였기도 하고, 결국에는 내 시선과 삶을 저며 전시하는 것과 회화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서였기도 하다. 내가 일관되게 생각하는 회화는 나라는 확신할 수 없는 개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는 것이었다. 확신할 수 없는 개체가 보는 의심스러운 세상은 오히려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기 때문에 의미화된 것들을 쉽게 벗겨낼 수 있다.
대상과 사람들이 내게 강하게 의미를 주는 순간에 그 의미와 충격적 감각을 벗겨내는 것은 충격에 매몰되지 않고 풍경을 샅샅이 보기 위한 나의 발버둥에 가깝다. 대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관찰하고 이 대상이 내게 왜 기묘한 감각을 주는지 곰곰이 생각하다 의미들을 차차 벗겨내다 보면 대상은 점점 처음에 내게 의미를 강요했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모습만 남게 되면 대상은 껍데기처럼 얇아지고 내게 납작한 재료가 된다. 재료가 된 이미지는 내게 색종이처럼 놀이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굴러다니며 다른 이미지와 뒤섞이고 끝말잇기처럼 서로 연동돼 새로운 풍경을 재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그럼 내게 충격을 주는 대상과 풍경이란 어떤 것일까? 주로 평이한 대상이 갑자기 다르게 인식될 때인 것 같다. 처음 보는 대상이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을 때라던가, 대상에 부여되어 온 의미를 돌연 비웃고 싶을 때같이. 예를 들어 최근에 자살 방지용 난간이 눈에 들어온 적이 있다. 난간은 자세히 보면 생김새가 우스꽝스러운데, 마치 손을 뻗어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막으려는 팔 같았다. 그러나 그 높은 높이에도 불구하고 사이사이는 충분히 넓어 바람이 휑하게 통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키보다 높은 난간이 사람을 덮칠 듯이 가로막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점이 내가 당시 느끼고 있는 세상의 웃긴 점이었다. 그것은 웃긴 껍데기에 가까웠다. 이름은 자살 방지용 난간이지만. 나는 난간을 만든 세상을 비웃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로 낄낄거리고 싶은 마음은 야릇한 충동으로 다가와 그 대상을 사진 찍고 더 얇게 저미게 만든다.
그 외에도 최근 끌리는 소재는 크록스, 모여있는 사람들, 매나 고양이의 눈, 엮인 나무, 멧돼지 같은 것의 가죽, 섞은 물, 일몰 같은 것이 있다. 이것들은 내게 야릇함, 슬픔, 강렬함,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사실 그 대상들에는 큰 의미가 없고 그저 존재할 뿐임에도 말이다.
사물들이 전해주는 감응은 주로 그 사물에 부여되어 온 사회적 메시지, 그 사물과 얽힌 사람들의 일화, 매체에서의 쓰임이 복합적으로 한 번에 내게 다가올 때 발생한다. 이번에 그린 크록스 그림을 예로 들어보면, 그림에서 등장한 크록스는 내 아버지의 낡은 신발이다. 나는 그 크록스를 지켜보면서 불쾌감을 느끼고는 했다. 일단 형태가 못생긴 데다가, 아버지가 그걸 신고 맨발 걷기에 나서고는 했기 때문에 안과 밖이 흙으로 뒤 덥혀 지저분 했다. 크록스에는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나는 그 신발을 보면서 노년 남성의 생에 관한 슬픔과 애착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이 남색 크록스는 내게 그런 불쾌하고 슬픈 대상이다. 이런 대상을 마주할 때 간혹 그 대상에 눈을 떼기가 어렵다. 그 밀려오는 복합성- 인체공학적이라고 하면서도 나름 저렴하고 한철을 나기 꽤 쓸만한 신발-이 대상에 여러 겹 씌워 혼란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때 정확한 끌림의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은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두고 그걸 드로잉 해보면서 왜 내게 감응을 주는지 생각한다. 드로잉은 이때 의미를 비워내면서 대상을 관찰할 수 있게 하고 그 대상과 나의 거리를 좀 더 멀찍이 떼어내 흘러들어오는 여러 의미들을 인식하고 의심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을 회화로 다시 옮기는 것은 그중에서도 내게 강렬한 이미지, 의미로 압도하는 이미지 일 경우에 발생한다. 그러나 드로잉보다 한 번 더 시간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회화로 옮겨지면 처음 대상을 봤던 경험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그때 회화 안에서 대상은 드로잉에서 납작해진 상태보다 더 납작해진 상태로 그림에 안착되는데, 그때는 의미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나 대상은 그냥 대상의 형태만 가지고 있게 된다. 나는 그 재료로 기능하는 상태의 이미지를 그림에 두고 다른 이미지와 섞어가면서 다른 맥락으로 화면을 전환시킨다. 회화에서 대상은 처음의 의미가 아예 없어지고 나는 그 대상을 비웃으며 놀이와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림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는 장이 되었고 나는 여러 의미에 전혀 억눌리지 않은 채로 대상을 대할 수 있게 된다. 그제야 나는 일상에서의 압도되는 감응, 죄책감, 억눌림과 전혀 상관없는 상태로 나아가 회화에서 자유를 찾을 가능성을 발견한다.
For this series, I intentionally removed the rules and limitations I had previously set for images. In the past, I approached images in a way that minimized narrative and focused on pure perception. However, I began to question this approach. Instead, I chose to incorporate images more closely tied to my own life, allowing them to assemble freely on the canvas. I decided to work in a more incomprehensible and selfish way, driven by curiosity about how far painting could go and by the realization that painting, in the end, is no different from dissecting and displaying my own gaze and life.
To me, painting consistently represents the act of capturing the world as seen through the lens of a self I cannot fully define. This uncertain self perceives a suspicious world—one where everything is questionable—allowing it to strip away the layers of meaning assigned to objects with ease.
When people or objects project strong meaning or evoke intense sensations in me, stripping away those meanings is akin to a desperate struggle to avoid being consumed by those impressions. By observing an object as if seeing it for the first time and carefully questioning why it feels strange to me, I begin to peel away its layers of meaning. Eventually, the object sheds the significance it once imposed and reveals itself in its purest form. At this stage, the object becomes thin and hollow, like a shell, and transforms into a flat material for me. As a material, it becomes something I can play with, like colored paper. These images roll around, intertwine with others, and connect like a chain game, offering the possibility of recomposing entirely new landscapes.
So what are the kinds of objects or landscapes that provoke such reactions in me? It often happens when an ordinary object suddenly takes on a different perception—like when I feel as though I’ve seen something unfamiliar before or when I want to mock the assigned meaning of an object. For instance, I recently noticed a suicide-prevention railing. Upon closer inspection, its design was absurd—like an arm reaching out to stop someone from jumping. Despite its imposing height, the gaps between the bars were wide enough for the wind to rush through. This railing, while ostensibly a barrier, solved nothing and seemed comically futile. It felt like a hollow shell, ridiculous in its very name: “suicide-prevention railing.” I wanted to laugh at the world that created such a railing. This desire to mock often manifests as a strange compulsion to photograph the object and reduce it into something even thinner.
Recently, I’ve been drawn to motifs such as Crocs, groups of people, the eyes of hawks or cats, entangled trees, wild boar hides, mixed water, and sunsets. These things evoke in me feelings of strangeness, sadness, intensity, or beauty, even though they hold no inherent meaning—they simply exist.
The impressions I get from objects are often a complex amalgam of their societal messages, anecdotes tied to them, and their media representations. Take, for example, the Crocs featured in one of my recent paintings. These were my father’s worn-out shoes, and they made me uncomfortable. Their ungainly form and the fact that my father would wear them while walking barefoot, leaving them dirty inside and out, added to my dislike. While the Crocs themselves held no meaning, they evoked in me a simultaneous sadness and affection for the life of an elderly man. This blue pair of Crocs became an unpleasant yet deeply moving object for me. When faced with such an object, I sometimes find it hard to look away. The layers of complexity—its ergonomic yet cheap design and practical seasonal utility—pile up and make the object overwhelmingly multifaceted. In these moments, I take a photo, sketch the object, and try to understand why it affects me. Sketching allows me to empty the object of its imposed meanings, observe it more closely, and create some distance, enabling me to question and examine the various meanings that seep in.
Translating this process into a painting only happens with the most striking images—those that overwhelm me with meaning. Yet, because the process introduces an additional layer of time, the resulting painting becomes even further removed from my initial experience. In the painting, the object, now completely devoid of its original significance, becomes even flatter than it appeared in the drawing. At this stage, the object is reduced to a mere form, serving as a material I can integrate with other images on the canvas. Through this integration, I play, mock, and fabricate, unburdened by the initial weight of meaning. The painting becomes a stage for entirely new narratives, freeing me from the overwhelming sensations of everyday life. At last, in painting, I find the possibility of freedom.
Q&A with Joonun Kim 김주눈
Q: ’죽음과 상실‘이라는 키워드는 최근까지 작가님의 회화에서 주요한 키워드로 지켜봐 왔습니다. 최근 이 부분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올해 6월에 했던 개인전까지는 키워드라기보다는 ‘죽음과 상실’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한번 바라보면 작가도 결국에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 단어들에 취약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전부터 이것들에 끌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저는 주로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감정들에 야릇함을 느껴왔 던 것 같아요. 그런 모순점에 대해서 화해하기가 좀 어려워서 작업을 두 가지 트랙으로 운용하고 있었어요. 부정적인 것에 끌리면서 그것으로 유희하고 싶은 자아와 한없이 슬퍼하기만 하는 반사하는 자아를 나누기로 한 거예요.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든 기간도 2-3년 정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제 그림이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에게 그림이 재미 없어진다는 건 삶에 새롭고 즐거운 부분이 없어진 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그 순간이 바로 올해 6월에 개인전을 끝내고 난 뒤였어요. 그래서 한 번 달라져보기로 하고 두 자아를 합친 방식을 고안하기로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도 바뀌어야 했는데, ‘죽음과 상실’과 함께 살아가기를 받아들여보기로 하고 좀 더 느리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살려고 했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이태원 참사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는 친구들의 영향이 있었어요. 그들의 활동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마음에 남는 게 있었는데 그게 그들의 외면하지 않는 태도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저의 외부와 내부에 가졌던 부정적인 착각들을 좀 더 유연하게 해보고자 했고, 그래서 광기로 유희하는 스타일과 슬픔을 반사시키는 스타일이 하나로 합쳐지게 된 거죠. 이런 방식을 실험 해보니 좀 더 작업하는 게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게 된 것 같아서 최근에는 개인전 이후에 있을 작업들을 두려워하면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더 느리게 주변부를 지켜보고 대화하면서 작업에서의 유연성과 당위성을 실험해 볼 예정이에요.
Q: 이번 전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던 회화란 작가님께 어떤 존재로 의미가 있을까요?
A: 저는 회화가 작가의 삶을 저며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은 제가 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더 확고하게 자리 잡았는데요. 작가들의 작업과 삶을 공부하면서 그들이 뭔가 중요한 어떤 것 하나에 메여있는 것 같았어요. 어떤 뿌리 질문이 있고 거기서 계속 나아간다는 느낌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죽음과 상실’ 같은 것에 이중으로 메여 있는 것 같은데 이 키워드가 복잡하고 울창한 숲이라면 저는 그곳을 해쳐서 걷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 숲에서는 덤불에 찔리고 별일이 다 일어나고 할 거 아니에요. 그리고 끝이 없을 수도 거기서 죽게 될 수 있고 버섯을 따거나 할 수도 있겠죠. 그런 헤맴 같으면서도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의 삶을 끌어서 모아다가 뭉쳐서 두고, 그걸 얇게 칼로 저민다면 제 회화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의 작업도 저는 이런 시선으로 보고 있기도 하고요. 이번 전시는 그런 의미로 2024년 6월 개인전 이후부터 2024년 11월까지 이것저것 바쁘게 지낸 저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했어요. 제가 보고 끌린 것, 그것을 보고 든 생각, 그것으로 이어진 상상, 그 상상으로 뭔가를 장난치고 그런 것들의 총합이에요. 그 사이사이에 죄책감과 미칠 것 같은 감각이 끼여있고요. 저는 이렇게 솔직하게 보여주는 회화가 지금은 좋은 회화라고 생각하고, 삶에서도 솔직한 것이 최근에는 가장 끌리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고 싶기도 하고. 이번 전시한 회화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솔직해져 본 어떤 찰나 같은 것입니다.
Q: 전시에 방문해 주신 관람객분들께 남기고 싶은 이야기
A: 저는 속도 조절을 지금 못하고 있거든요. 한국의 너무 삐른 변화와 속도 속에서 저를 갈아내듯이 지내다가 에너지 고갈을 깨닫고 나서야 아 이제 진짜로 천천히 주변부를 둘러보고 저를 둘러보지 않는다면 저와 제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이런 감각은 저뿐만 아니고 대부분 느끼고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속도 조절이 저에게 중요 과제이고 다른 분들에게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일 텐데 방법을 알고 싶어서 주변에 조언도 구해보고 대화도 많은 사람들이랑 해보고 있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솔직하고 느리게 공부하고 더 깊이 대화하고 순간을 즐기면서 살아보려고 해요.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취미도 만들어 보려고 하고. 관람객분들도 주변 분들을 좀 더 지켜봐 주시고 속도 조절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아직 못하지만 샅샅이 주변을 보는 감각을 제 전시에서 일단 느껴주셨으면 좋겠고, 다음 전시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제 삶을 보실 수 있겠네요.
Q: Themes of “death and loss” have been central to your recent works. How do you view these themes now?
A: Until my solo exhibition this past June, I felt more like I was avoiding the themes of “death and loss” rather than confronting them. As an artist, and ultimately a human, I couldn’t help but feel vulnerable to these ideas. At the same time, I’ve always been drawn to them. I think I’ve been strangely fascinated by emotions humans usually perceive as negative. Reconciling this contradiction was challenging, so I divided my approach into two tracks: one self that is drawn to and playful with these negative aspects, and another that reflects on them with endless sorrow. For about two to three years, I found this duality satisfying. But then I began to feel like my paintings were becoming uninteresting, which for an artist means that life itself is losing its sense of novelty and joy. That realization hit me after finishing my June solo exhibition.
So, I decided to change—to find a way to merge these two selves. This required not just a shift in style but a transformation in my attitude toward life. I decided to accept living alongside “death and loss” rather than avoiding them. I started to look at my surroundings more slowly and carefully. This shift was influenced by some friends working on projects related to the Itaewon disaster. Watching their efforts from a distance, I was struck by their refusal to look away. That inspired me to approach my own internal and external struggles with more flexibility. As a result, I fused my playful, madcap style with my reflective, sorrowful approach. Experimenting with this new method has led me in exciting new directions, and while I feel some anxiety about my future work, I’m also deeply excited. Next year, I plan to take things even slower, observing and engaging with my surroundings while experimenting with flexibility and purpose in my art.
Q: What role does painting play in your life, and how do you define it?
A: For me, painting is the act of slicing my life into thin pieces and spreading them on the canvas. This perspective became clearer while studying art history. As I delved into the works and lives of artists, I noticed that they seemed bound to something deeply significant—a core question or root they continuously explored. For me, that root might be “death and loss.” If these themes are a dense, tangled forest, then I am wandering through it—getting scratched by thorns, encountering all sorts of surprises. Perhaps there’s no end to this forest; I might even perish there or find a mushroom to pick along the way. This wandering mirrors my daily life, and when I gather those moments, compress them, and slice them thinly, they become my paintings. I believe this perspective applies to most artists’ work as well. This exhibition, in particular, is an honest reflection of my life between June and November 2024—a mix of things that caught my attention, the thoughts they provoked, the imaginings that followed, and the playful experiments born from those imaginings. Interspersed are moments of guilt and an almost maddening intensity. For me, a good painting is one that honestly reveals such moments, and recently, I’ve been drawn to honesty in both life and art.
Q: Any message for those visiting your exhibition?
A: I’ve been struggling with pacing myself. Living at the breakneck speed of constant change in Korea, I realized only after burning out that I couldn’t continue this way—not if I want to find happiness for myself and my friends. I imagine many others feel the same. Slowing down has become a priority for me, and likely for others too, but I’m still figuring out how. I’ve been seeking advice and having conversations with people about it. Next year, I plan to live more slowly—studying, engaging in meaningful conversations, and savoring the moment. I want to find joy in small things and pick up hobbies. To those visiting this exhibition, I hope you take a moment to truly observe the surroundings and find that sense of attentiveness reflected in my work. And in my next exhibition, perhaps you’ll see a life where I’m learning to slow down, however imperfectly.
Shall we cross together?
909 × 727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909 × 727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Dad's shoes
606 × 455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606 × 455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The gifted border collie
606 × 455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606 × 455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Untitled
273 × 22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273 × 22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Unstable arrangements
1622 × 1303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1622 × 1303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Minor decisions
1455 × 97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1455 × 97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These days
333 × 242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333 × 242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Someone's dirty feet
727 × 53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727 × 53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Take it out and move on
409 × 318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409 × 318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Untitled
273 × 22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273 × 22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Tanggled eyes
270 × 455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270 × 455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With a sharp edge
455 × 106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455 × 1060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Untitled
227 × 158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227 × 158 m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4
Artist
김주눈 Joonun Kim (b.1994)
김주눈 작가는 주변을 의심하며 보는 관찰자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김주눈의 삶을 둘러싼 비극들을 주시하여 그 비극들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원인과 결과를 살펴본다. 다만 압도되는 강렬한 슬픔에 몸을 내어주지 않고자 의미화되는 모든 대상들에 의미를 털어내고 놀이하고 거짓말하고 유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환영으로 회화에서 자유자재로 놀이하여 현재에 필요하거나 금기된 영역을 비언어적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방식을 사용 중이다.
Joo Nun Kim is an observer who approaches the world with a skeptical eye. Among her subjects, she closely examines the tragedies surrounding her life, delving into their causes and consequences. However, she refuses to surrender to the overwhelming weight of sorrow. Instead, she seeks to strip meaning from objects laden with significance, exploring ways to play, deceive, and revel in freedom. Through her work, she uses illusion and playfulness to navigate painting with fluidity, visualizing both the necessary and the forbidden in a nonverbal, dynamic manner.
Education
2024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조형예술과 석사
2018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미술사학과 학사
Exhibition
- Solo
2024
불안정한 배치들, 포켓테일즈
Phantom/Phantom Pain, 큐아카이브, 서울
Phantom/Phantom Pain, 큐아카이브, 서울
2022
시간 지연, 상업화랑, 서울
2021
해는 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백영, 서울
- Group
2024
NEXT-UP 2, 화인페이퍼 갤러리, 서울
NEXT-UP 1, 온수공간, 서울
모든 시공간의 예술, 전시공간, 서울
Happ Birthday 2, 그블루, 서울
Flow, 맨션 9, 서울
NEXT-UP 1, 온수공간, 서울
모든 시공간의 예술, 전시공간, 서울
Happ Birthday 2, 그블루, 서울
Flow, 맨션 9, 서울
2023
hree holes, 에브리아트, 서울
Dry skin, 전시공간, 서울
Homely,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서울 2022 작은동물그림, 175 갤러리, 서울
Dry skin, 전시공간, 서울
Homely,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서울 2022 작은동물그림, 175 갤러리, 서울
2022
결코 끝나지 않는 하룻밤, 카다로그, 서울 2021 그리고 라이브, 문래예술공장, 서울
2021
마음 조각, BGA, 서울
서:로 프로젝트 보고전, 서:로, 서울
다시 만날 때 까지, 쇼앤텔, 서울
서:로 프로젝트 보고전, 서:로, 서울
다시 만날 때 까지, 쇼앤텔, 서울
Residency
2018
남해 돌창고 레지던시, 서울
Program
2024
The Crit 프로그램 선정, 사루비아, 서울
2021
EX-UP 프로그램, 상업화랑, 서울
◻︎ Artist: 김주눈 Joonun Kim @joo_nun
◻︎ Photography : 고정균 Jungkyun Goh
◻︎ Text: 김채송 Chaesong Kim_pokettales Director / 김주눈 Joonun Kim
◻︎ Q&A: 김채송 Chaesong Kim_pokettales Director / 김주눈 Joonun Kim
◻︎ Design: studio PKTD
© 2024. JOONUN KIM. All rights reserved.
◻︎ Photography : 고정균 Jungkyun Goh
◻︎ Text: 김채송 Chaesong Kim_pokettales Director / 김주눈 Joonun Kim
◻︎ Q&A: 김채송 Chaesong Kim_pokettales Director / 김주눈 Joonun Kim
◻︎ Design: studio PK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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